인간이 만든 새로운 지질 시대, '인류세'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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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란 용어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오존층 구멍을 발견해 1995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파울 크루첸'이 지구 환경 국제회의에서 “우리는 이제 홀로세가 아니라 인류세에 살고 있다”라고 말한데서 시작되었다. 인류세(Anthropocene)란 인류를 뜻하는 ‘anthropos’와 시대를 뜻하는 ‘cene’의 합성어로서, 인류가 만든 지질 시대라는 의미다. 그의 발언 이후 인류세는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과학 잡지에도 등장하는 국제적인 유행어가 됐다. 인류세를 인류가 만든 새로운 지질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인류가 지구상에 새로운 지질 시대를 만들어낸 것일까?




# 지질 시대는 어떻게 구분할까?

지질 시대의 구분은 지구의 탄생과 다세포 생물이 번성한 '선캄브리아 시대'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최초 육상 생물이 출현한 고생대, 공룡 등의 파충류가 번성한 중생대, 포유류가 번성한 신생대로 구분한다. 각 지질 시대는 다시 세분되는데, 신생대의 경우 약 6,500만 년 전 공룡 멸종 이후부터 170만 년 전까지를 제3기, 그 후부터 현재까지를 제4기로 부른다. 지구 전체 역사 중 극히 짧은 제4기는 다시 플라이스토세와 홀로세로 구분된다. 즉,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신생대 제4기의 홀로세에 살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 환경 변화로 인한 지질학적 흔적을 기준으로 지질 시대를 구분하고 있다. 그럼 과연 인류세가 자연에 뚜렷하게 남길 흔적은 무엇일까? 이때까지 각 지질 시대를 구분한 흔적들은 자연이 만든 것이었지만, 인류세의 흔적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또한 그 흔적의 대부분은 인간의 환경 파괴와 밀접히 연관된다. 





# 인류세가 새로운 지질 시대가 된다면?

만약 몇 만 년 후의 인류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지층을 보게 된다면 ‘닭의 시대’라고 이름 붙일지도 모른다. 왜 닭의 시대라고 추측할까? 전 세계 230억 마리, 인류 한 사람 당 3마리에 해당하는 개체 수이다. 오늘날 닭은 인간에 의해 선별적으로 계량되어 1950년대에 비해 무려 5배나 빨리, 더 크게 성장한다. 이렇게 계량된 닭은 지구에 사는 모든 조류를 합친 수보다 많아져서 닭 뼈가 인류세를 구분할 수 있는 흔적이 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고 버려지며 지구의 땅과 바다를 오염 시키는 막대한 양의 플라스틱도 유력한 후보이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이미 심해에서부터 극지방까지 널리 퍼져 있다. 바람과 파도 등에 의해 분해되더라도 썩지 않고 미세 플라스틱 형태로 쪼개져 전 지구에 퇴적되어 있을 것이다. 또 어떤 것이 인류세의 흔적으로 발견될까?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사용되고 있는 희토류 원소, 콘크리트, 알루미늄이나 납 등의 금속도 많이 발견될 것이다. 또한 산업 혁명 이후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해 급격히 증가한 이산화탄소 농도로 인류세를 구분할 수도 있다. 


공장식 닭 사육장 모습



# 인류세의 시작은 언제일까?

2002년에 인류세가 언급된 이후, 시작 시기를 언제로 할 것인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인류세의 시작에 대해서는 크게 네 가지 주장이 있다. 첫 번째, 인류의 농경 활동이 시작된 약 8000년 전이다. 인류가 농경 활동을 시작하면서 지구 환경이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지 100년 정도 지난 1610년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수많은 동식물과 각종 감염성 질병들이 직·간접적으로 인류와 함께 이동했다. 이 당시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갈 때 옮겨간 천연두 때문에 5,000만 명 이상의 아메리카 원주민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의 농업 생산량이 급감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산업 혁명으로 인하여 화석 연료 사용량이 증가하고 사회 집단 사이의 거래가 증가한 1760년과 1880년 사이다. 화석 연료 연소로 인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했고, 인류의 발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파울 크루첸이 2002년 인류세를 주장할 때에 제안한 시기이기도 하다. 


 네 번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1945년이다. 인구 폭발의 생물학적 변화와 함께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플라스틱, 알루미늄, 콘크리트 등 ‘기술 화석’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물질이 퇴적층에 쌓이기 시작했다. 또한 기후 변화가 발생해 해수면의 높이도 크게 상승하고, 탄소, 질소, 인 순환에 변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 인류세의 끝은 멸종일까? 

지구에서는 고생대 오르도비스기(4억 4,000만 년 전)부터 중생대 백악기 말(6,500만 년 전)까지 총 5번, 생물종의 4분의 3 이상이 사라지는 대멸종기가 있었다. 제6의 대멸종이 다가오는 조짐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매년 남한 면적 4분의 3에 맞먹는 7만 5000 ㎢의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35년 간 인간은 두 배로 늘었지만, 무척추 동물은 45 %가 사라졌다. 


이제까지 5번의 생물 대멸종이 일어났고, 모두 지질 시대의 경계점으로 인정됐는데, 1945년 이후 앞선 5번의 대멸종과 유사한 속도로 생물종이 급감하고 있다. 현재 15분마다 생물 한 종이 멸종하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지금 추세라면 이르면 100년 안에 생물종의 70%가 사라지는 제6의 대멸종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구분1차 대멸종2차 대멸종3차 대멸종4차 대멸종5차 대멸종6차 대멸종(?)
시기약 4억 4500만 년 전약 3억 7000만 년 전약 2억 5000만 년 전약 2억 500만 년 전약 6500만 년 전현재 진행 중
추정 
원인
빙하기 도래
우주의 감마선 폭풍
화산 폭발
빙하기 도래
운석 충돌
지구 온난화
운석 충돌
화산 폭발
대규모 화산 폭발운석 충돌
대규모 화산 폭발
인류
사라지는 생물종(%)867596807670

역대 대멸종





# 인류세는 왜 공식 인정되지 않을까? 

인류세는 공식 인정되지 않은 지질 시대다. 홀로세가 시작된 지 1만 1000년밖에 되지 않았고, 급격한 변화가 시작된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으므로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또 홀로세 자체가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했으므로 인류세를 굳이 나눌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2016년 지질 시대 구분을 결정하는 국제층서위원회는 인류세를 공식적으로 도입할 지를 두고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29명의 회원은 인류세 지정에 찬성했으며, 4명은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인류세 실무그룹(AWG)은 이 투표 결과에 의해 2021년까지 인류세 지정에 대한 공식 제안서를 국제층서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제지질연합(IUGS) 산하 기관으로, 인류세에 대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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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17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흔적에 의해 명명된 홀로세는 2008년에 결정됐다. 당시만 해도 홀로세의 지질 시대가 1,000만 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만약 인류세가 공식 인정될 경우 홀로세는 지정된 지 불과 10여 년 만에, 그리고 예상 수명의 1/1000밖에 채우지 못한 채 종말을 맞게 되는 셈이다. 인류의 손에 의해 환경이 변하고 있고, 지구의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홀로세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는 인류는 인간과 지구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 글쓴이 와이즈만 영재교육연구소 과학팀 김예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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